Loveisillusion

Hellkite는 모 대학'사설'BBS에서 Loveisillusion?이라는 게시판의 보대 - 보드대표를 의미하려나? 게시판지기라고 생각하면 얼추 맞는다 - 를 맡아왔던 아이디다. 2000년 내 나이 스물에 즈음해 취임한 이후로 한 번도 그 권좌를 내어주지 않았지만, 내게 그때가 조금씩 잊혀져 가듯이 어느덧 그 BBS는 나를 잊었다.

당시의 나는 미쳐 있었다. 해당 BBS에서 활동하던 '사부님'을 동경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나의 왕성한 활동을 보장했던 키워드는 꿈 그리고 사랑이었다. 대답되지 않은 고민을 짊어지고 타지에서 공부하던 나에게 외로움은 필연적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을 가져다 주었고, 그 모든 밤을 파란 BBS화면에서 글을 쓰며 보냈다. 가슴에 생각이 차올라 쓰러질 것만 같던 그때, 시간을 들이부어 쉼없이 글로 바꾸어대는데도 내 가슴속은 못다한 이야기로 넘실거려 미쳐버릴 것만 같은 심정으로 잠들던 나날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게도 사랑은 찾아왔다.


참으로 우습지만, 당시의 나는 사랑이라는 모험을 그리는 방랑자였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상상은 으레 가장 이상적이기 마련이듯이, 정작 새장안에 있음에도 저 산너머의 파랑새를 꿈꾸는 것처럼 내게 사랑이란 마치 일생을 걸고 도전해볼만한 거룩한 Quest만 같았다. One and only - 오직 단 하나의 사랑이란 목표에 도달하는 여정은 그래서 고난과 역경이 곳곳에 도사려야 마땅하고, 그 장애물을 헤치고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인류사에 길이 남을 완벽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되리라 여겼다. 그래서, 첫사랑이 못견디게 아팠음에도 그 아픔이 내가 견뎌내야할 당연한 임무라 믿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첫사랑의 상대는 나와 많은 점이 어긋나 있었다. 나보다 책가방이 더 크던 시절 동네 개들과 노느라 학교가는 것도 종종 잊어먹던 나는, 개들이 으레 그러하듯 얼르고 쓰다듬고 안고 뽀뽀하는 것에 대해 언제나 보답받아 왔고, 그렇게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아낀다는 개념이 내겐 상대가 나의 호의섞인 제스처를 받아들이고 그에 보답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애는 스킨십을 싫어했다. 그때의 내가 얼마나 당혹해 했는지는 지금도 선명하다. 내가 알고 있는 아낌의 방식은 제스처말고는 없는데, 빤히 쳐다보면 부끄러워 고개를 돌리고 손을 잡으면 살그머니 빼는 그애의 앞에서 바작바작 타들어 가는 마음만 부여쥔 채로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개과(科)였고 그애는 고양이과(科)라고 할까. 불러도 오도카니 돌아앉아 수염만 쫑긋거리고, 쓰다듬어도 고개돌리고 쳐다보지도 않은 채 꼬리만 흔드는 고양이의 모습에서 이제의 나는 나를 향한 관심을 읽을 수 있지만, 당시의 나는 상처를 받았다. 둔한 눈치로 오죽 오해를 했으면 "나는 너를 이마안큼 좋아하는데 너는 나를 요만큼도 좋아하지 않잖아!"하고 화를 내었을까. 이말에 늘 웃던 그애의 표정이 변했고 "나도 너를 좋아하는데 너는 왜 몰라주느냐"고 아파하는 그애의 말에 덜컥 겁이 난 나는 무조건 내가 잘못했노라며 빌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의 방식과 다른 그애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것은 곧 삐걱대기 시작했다. 가장 나쁜 일은 이 다음에 일어났다.

눈치빠른 사람은 짐작을 하겠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렇게 축복받은 인종이 아니라 내게 일어난 심리적인 변화를 모르고 있었다. 빗대어 말하자면 - 정중하게 닫힌 대문과 자신의 능력으로 넘어다 볼 수 없는 담장 밖을 하릴없이 맴돌던 개(나다)가 낑낑대다 못해 홧김에 사납게 짖어대었더니 주인이 문 밖으로 얼굴을 내민 게다. 물론 깨갱하게 두들겨 맞는 결과가 되었지만, 이 결과는 거꾸로 이 멍멍이 생각엔 맞을 각오만 하면 주인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어이없는 결론이 되었던 거다.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던 나는 애먼 자존심과 더불어 소심했던 성격에 힘입어 모든 불안을 꾹꾹 눌러둔 채, 앞에서는 웃고 돌아서서 불안해하기를 거듭하다 불안이 나를 삼킬 때면 그애를 상처입힘으로써 나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려고 들었다. 오죽하면 당시에 나는 '밉다'라고 내게 말하는 그애의 말이 '싫다'가 아니라는 안도감에 차라리 기뻤을까. 이러한 할퀴기가 반복됨에 따라 서로에게 상처가 늘어갔고, 어느덧 흉터가 가득한 마음을 안고서 서로 헤어졌다. 아니, 헤어져야 했다.

받은 선물을 되돌려주고 연락처를 지우고 모든 연락을 끊고서 이제는 잊었구나- 하고 자신했던 한참의 시간이 흐른 어느 때, 발신자 표시조차 없던 전화를 받고서 처음의 '여보세요'에서 그애인 걸 한 번에 알아차리는 나 자신을 저주했다. 목소리는 술에 취해 있었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는 단어는 나의 이름과 '보고 싶다'는 두마디가 전부였다. 그 단 두 마디는 나를 완전히 부수었고, 나는 서글퍼서 차라리 기뻤다.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으나 결말은 거의 예정된 바. 뻔히 보이는 결말을 앞두고서도 좋아했던 마음을 어쩌지 못해, 그렇게 나의 첫사랑은 다시 죽어야 했다.

하지만 끈질긴 첫사랑의 내도록 나를 괴롭혔던 것은 엉뚱한 부분이었다. 이 Quest의 수행을 위해서는 상대의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인격 위에 보답을 바라지 않고도 베풀 수 있는 아량과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을 겸비해야 하는데, 실제의 나는 눈치없고 속좁고 불안에 떠는 일개 찌질이에 불과했다는 것. 그렇게 이 Quest는 나를 내가 아닌 다른 훌륭한 사람으로 변화하기를 요구하는데, 정작 나는 아무리 용을 쓰고 날뛰어 봐야 그토록 위대해지지는 않았고 그 사실은 사랑을 꿈꾸던 나를 끝없이 좌절시켰다. 아니 그보다 더 비참했다. 함께 있는 시간동안에는 희망에 부풀었다가 돌아와 홀로 지내는 밤이면 스며드는 자괴감 - 그처럼 희망과 좌절이 번갈아 덮치던 경험은 순수한 좌절을 차라리 바랄만큼 더욱 괴로웠고 처절했다. 위대한 사랑을 완수하지 못한 찌질이 돈키호테 Hellkite는 그래서 푸욱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돌아와야 했다.


스무살 나의 사랑과 서른살 나의 사랑이 반드시 다를 것을 나는 이제 안다. 설령 같은 사람이 내 곁에 있다고 해도 그를 향한 나의 마음이 시간에 따라 변하리란 것을 나는 이제 인정한다. 영원하리라 맹세했던 정열도 시간의 바람 속에 따스한 한 줌의 추억이 되어 흩어지고 말리라는 것을 나는 이제 두려워하지 않는다.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어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까지 사랑할 수는 없노라 했던 꼬장꼬장한 자존심을 나는 이제 경멸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당당히 두 팔 벌려 구애하고픈 마지막 한가닥 자존심마저 없다면 그것이 어찌 남자이겠는가.

사랑은 또다시 온다 -
인생 선배의 지나간 한마디 조언을
이제야 비로소 알겠노라 말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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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 꿈꾸는 者를 위하여 : Soulmate 2007-11-23 18:00:17 #

    ... 초의 경험은 이후의 경험에 대한 인식을 결정짓기 때문이라 말하며. 나도 내 스스로에게 누누이 그리 얘기해 왔다. 그리고 나도 그리 알리라 믿었다. 그래서, 첫사랑 이후 나의 사랑에 대한 인식이 비뚤어져 있었음에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첫사랑이 갈망과 소유욕, 자존심과 그에 따른 자괴감 사이에서 휘청댔던 이후, 사랑이란 감정은 으레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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