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논쟁에 대한 결론 진지한 이야기

체벌논쟁의 맹점에 뒤이은 글.

0. 위의 글을 논설문이라 착각하는 경우가 없길 바란다. 저 글 전체에서 주장하는 문장은 "폭력교사를 원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자식이 낙오할 수 있는 가능성부터 인정하라." 이 문장 단 하나이며, "그리고 도전에 있어 이전의 낙오를 겁내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자."라는 뒤이은 문장이 유일한 청유문이다. 나머지 모든 문장은 사실과 추론, 문제제기를 위한 전반적인 설명문이다. 자기 글 자기가 해설하려니 서글픈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글 마무리에 함축적인 문장 두어줄을 마치 시인양 던져놓고 끝맺는 습관을 버리지 못해 읽으신 분들에게 오해의 소지가 있는 듯 하니 그에 대한 자세한 해설 및 보충 의견을 쓰겠다.

1.

'폭력교사를 원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자식이 낙오할 수 있는 가능성부터 인정하라.
 그리고 도전에 있어 이전의 낙오를 겁내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자. ' 

- 이 문단이 의미하는 바는 대단히 함축적인데, 각각의 문장을 풀어서 해설하면 첫번째 문장은 1-1, 두번째 문장은 1-2 와 같다.

1-1.

체벌논쟁 관련으로 수많은 의견들을 보아온 바, 교사의 폭력에 당해 아직도 그 선생 이름/별명만 생각하면 이가 갈리고 악몽에 시달린다는 사람도 정작 자기 자식은 멀쩡히 공부잘하고 대학가서 안정된 보수기득권 층으로 무사히 편승하기를 바라고 믿더라. 아니면 이 나라를 뜰 생각을 하든가. 절대 자신의 자식이 "아빠 엄마 전 공부가 싫어요"라고 자신에게 반항해 올 일말의 가능성조차 염두에 두고 있지 않는 그 인식상태 그대로 폭력교사 절대반대라고 주장하더란 말이지. 

분명 폭력교사라는 결과물은 우리의 부모가, 그 비뚤어진 교육열이 나를 두들겨 패서라도 대학에 집어넣어달라고 간절히 소망해 그 모든 부모의 소망들이 모여 이룩된 제도 - 그 교육제도가 만들어 낸 부산물이다. 그런데 그런 제도의 피해자인 내가, 부모가 내게 바라듯 나의 자식 또한 그러기를 또다시 바라면서 교사의 폭력이 근절되기를 동시에 원한다는 것이 과연 앞뒤가 맞는 말인가? 

그렇기에 이 땅에서 교사의 폭력이 사라지기를 바란다는 것은 
"아빠엄마 난 브레이크 댄스가 좋아요!" 라고 기쁘게 말하면서 하루 종일 팔굽혀펴기와 근력강화운동에 매진하고 시간나면 친구들이랑 카세트 들고 공원에서 춤추는 데 여념이 없는 나의 자식을, 얼르고 달래고 말 안들으면 패서라도 대학은 보내야하는데 하며 발을 동동 구르면서 남들 앞에서 내 자식은 춤추노라 말하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는.것.과 동치라는 얘기다.

폭력교사는 근절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내 자식은 대학나와서 떵떵거리며 살아야 한다!! - 이 이중잣대는 당신이 두들겨 맞는 것을 용인했던 당신의 부모가 가진 기준 - 두들겨 패서라도 내 자식 대학에 보내달라 - 에 비해 그렇게도 떳떳하고 자랑스러운가.

1-2.

이 문장에 대해 - 이 글 전체가 저러한 논조로 귀결되기 위한 치밀한 구성을 밟아온 것 치고는 마지막 귀결이 이상하다 - 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는데 그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전의 글은 설명문이다. 논설문이 아니다. 묘사한 모든 상황은 비관적이다. 우리네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가 그러하고, 교육공무원으로서 대학입시만을 위한 교육과정하에 하루하루 죽어나는 선생들이 그러하고, 십일월이 되면 국내 사찰/성당/교회에서 애먼 기원에 열올리는 학부모가 그러하다. 그래서 묻노니,

이 모든 상황을 이대로 둘건가?

바꿔야 하지 않겠나 말이다. 더 나은 모습으로.
그래서 나의 자식과 우리의 후손에게 더 나은 내일을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나.
우리의 선대가 저지른 잘못이 그네가 해결하지 않은 채로 우리의 눈앞에 떠내려 와 있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둘건가?
염증이 끓는 지금의 모습을 두고 니미 조또 세상 꼬라지 좋노라 - 어느 술집에서 술 퍼먹고 욕하면 그래 세상이 나아지던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 이에 대한 나름의 대답이 두 개의 문장이다.
그 더 나아질 세상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이 물음에 대한 내 답이 두번째 문장이다.

자식의 낙오를 부모가 납득할 수 있어야 교사의 폭력은 필요가 없어질테고, 경주에서 1등 못하면 죽어야 하는 세상이 아니라 까짓거 넘어졌으면 다시 일어나서 달리면 되는 세상이어야 부모가 자식의 넘어짐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게 아니겠는가?

자전거를 배울 때처럼 수없이 넘어지더라도 해질녘쯔음에는 이미 마음 가는대로 달릴 수 있는 세상, 그래서 원하는 자 언제라도 다시 배울 수 있고 다시 인생의 트랙으로 복귀할 수 있는 이 지구상에 실존(實存)하는 세상은 - 대학으로 가는 외줄타기에서 절대로 떨어져선 안되며, 필요하다면 옆의 친구 등짝을 걷어차 떨어트려서라도 너는 살아남아라 말하는 우리 부모의 세상에 비해 그저 허무맹랑할 뿐일까? 


2. 어떤 이가 화단에 고무호스로 물을 주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언제부턴가 그 물줄기가 지나쳐 꽃이 꺾이고 흙이 패여 뿌리가 드러난다. 꽃이 시들어 가는 것을 목격한 그는 당황한다. 이 사람은 어떻게 해야할까?

너무 지나쳐서 꽃을 상하게 하는 이 물줄기가 문제이니, 호스에서 나오는 물줄기를 엄벌에 처하고 다시는 꽃 근처에도 못가도록 강력하게 규제하여 그 출구를 꽁꽁 틀어막아야 마땅하다! - 는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은 바보다. 그렇게 호스의 출구를 틀어막으면 얼마 안가 호스의 낡은 틈새로 미친 듯이 물이 튀거나, 급기야 호스와 수도꼭지를 연결하는 이음새가 터져버려 더이상 호스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초등학교 화장실 청소의 경험에서조차 배운다.

물줄기가 너무 강하면, 수도꼭지를 돌려 잠그어라. 그게 맞다. 애먼 물줄기에게만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3. 체벌논쟁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당부.

선생도 사람이다.
임용고시 뚫고 교사가 되어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당신처럼 정의에 불타고 비참한 현실에 울분을 느끼던 똑같은 젊은이였다.
그런 새파란 젊은이가 현실에 찌들어 어느덧 똥개조차 피하는 선생나부랭이로 탈바꿈해 우리의 아들딸을 손찌검하는 모습을 보며
당신은 그저 분노할 뿐인가. 난 분노를 넘어서 무척이나 슬프고 괴롭던데.

현실의 책임소재를 선생에게 모조리 떠넘기지 마라.
맞아본 당신이 다시 또 당신의 자식을 두들겨 패지 마라.
그래도 어떻게든 내 자식만은 잘되야 한다! - 그대의 생각이 그대의 부모와 하나도 다를 바 없으면서
우리의 선대가 우리에게 물려준 지금의 현실이 변화하고 개선되리라 기대하지 마라.

그 다른 누가 날 위해 세상을 내 입맛에 맞게끔 고쳐 줄거라 기대하지 마라.
내가 바꾸지 않으면 이 세상 그 어느 작은 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런 내가 모두가 될 때, 세상은 조금씩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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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MoGo 2007/11/04 11:15 # 답글

    교사의 체벌이 학생의 낙오를 막기만을 위해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말씀하고자 하시는 요지는 분명히 이해했고 저 역시 동의 합니다만,
    글쎄요, 요즘 문제시 되는 체벌 중 다수가 그러한 것과는 상관없어 뵈는 탓에
    뭔가 서로 다른 논점으로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체벌이 어느 정도까지는 행동수정의 효과를 보인다는 것에 동의하며
    현재와 같은 교육 환경에서 관리자에게 어느 정도 유용하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10세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초교 교사란 자의 폭력이나
    이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부각시킨 남고생에 대한 교사의 폭력같은 것이
    현재의 교육 구조로 인해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이기 때문에,
    그저 현재의 교육 환경의 구조적 폐해로만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요지에는 동의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Hellkite 2007/11/04 12:04 # 답글

    마침 로긴해 있는 동안 덧글을 달아주셨기에 짧게 답을 답니다.

    글에서 폭력교사 물러가라-라는 의견에 대한 비판이 두드러져 있음으로 인해 자칫 제 논지가 필요악으로서의 폭력을 옹호하는 것으로 비춰질 소지가 있음을 인정합니다만, 자세히 읽어보시면 제 모든 의견은 '체벌은 폭력이다'라는 대전제에서 출발해 '가능한한 어떠한 형태의 체벌도 행해져서는 안되는' 방향으로 시선이 돌려져 있음을 파악하실 수 있을 겁니다.

    체벌논쟁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폭력의 중독적인 속성에 대해 이미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허나 정작 맞고 자란 아들이 아버지가 되면 자기가 절대로 닮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맹세했던 아버지처럼 제 자식을 팬다던가요. 그토록 증오하던 대상을 왜 닮는가 - 에 대한 대답 중에는 '자신이 배운 방식이 그것 뿐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다'라는 자못 섬찟한 답변이 있습니다.

    이러한 대물림되는 폭력의 역사는, 물론 그 한 개인의 강인한 의지와 투철한 신념으로 극복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어느 곳에는 교육자로 한 점 부끄러움 없을 분이 있을 겁니다. 허나, 아니꼬운 상사에게 바른 말 못하고 속으로 삭히는 대부분의 우리들과 대부분의 선생들은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구조적인 부담을 염두에 두지 않은 현상 자체를 문제삼는 대부분의 목소리는 그 책임을 선생 개인에게 묻기에, 부모로서 함께 짊어져야할 책임마저 그들에게 전가하고서 그들을 욕하는 대열에 끼어 자신의 죄책감을 벗어버리려는 얌체들도 있습니다. '폭력교사가 싫으면 니 자식의 낙오가능성부터 인정하라'는 문장은 그러한 책임전가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체벌반대론자들이 현실적인 개선을 이루기 위해서 고려해야 하는 점'입니다. 체벌옹호론자들을 비판하지 않으니 너도 체벌옹호론자가 아니냐 - 구요? 천만에요. 비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냅두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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