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시장에서 상품으로써의 교육

이 글에 덧글을 작성하다가 너무 길어져서 통째 새 글로 다시 적는다. 이하의 내용이 경어체인 것은 그 때문이다.

--------------------------------------------------------------------------------------------------------------------

'주입식 교육의 현장'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와의 별다른 구별없이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환경의 속성상 동일한 주입식 효과를 전제함으로 인해 학생들에게 '사상을 주입시키는 효과'를 가지기 때문에
해서는 안될 행위였다. - 강의 중의 아닌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의사표시를 했어야 한다.

이러한 주장이 공존님의 의견의 주를 이루고 있군요.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습니까?
서로의 입장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하는 지 이해가 되는데, 그에 대해 세세히 얘기하면 대충 이 논의도 결말에 닿을 듯 합니다.


1. 시장 속에서의 교육 상품

저는 '도박'에 대해서 중립적인 입장입니다. 이것은 제가 누차 강조하는 일관성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해당 강사의 역할을 '지식장사꾼'이라고 간주하는가, '또다른 교육자'로 간주하는가에 따라 그가 준수해야할 도덕적 규율의 범위 또한 달라집니다. 지식장사꾼 - 상인이라면, 그가 지켜야할 규범은 '공정한 이익추구'에 국한됩니다. 또다른 교육자 - 교사라면, 그가 지켜야할 규범은 '바람직한 선생(先生)님'을 포함합니다. 릭블러드님과 공존님은 '지식장사꾼'이라는 입장에는 동의를 하시면서, 그가 가져야할 도덕적인 책무의 범위는 '선생님'의 그것으로 늘려잡고 있습니다. 해당 강사가 장사꾼 - 그래서 그의 강의는 상품이라면, 그가 가져야하는 도덕적인 책무 또한 그 범주로 국한해야 맞지 않습니까?

'왜' 그 강사가 해당발언을 했는지는 오직 발화당사자만이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무의미한 추측은 하지 않습니다. 오직 확실한 사실은 '강의 중간에 자신의 주장을 했다'는 것 뿐이며, 이러한 Fact에 국한해서만 가치판단이 가능합니다. 그로 인해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은 강의의 상품성에 손실이 있었고, 사교육 시장의 소비자는 자신의 정당한 이익 침해에 대해 항의할 수 있으며, 개선되지 않는다면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시장주의 최후의 권한을 발휘할 수 있다 - 여기까지가 제 판단의 끝입니다. 해당 강의는 공교육처럼 대체불가재가 아닙니다.

왜라고 생각하냐구요? 글쎄요. 입이 근질거렸나 보죠. 자신의 강의시간 동안 강의에 100% 충실하든 자기 자랑에 여념이 없든, 그것은 강사 마음입니다. 자신을 자해할 권리가 있듯, 자신의 상품성을 갉아먹는 것 또한 시장 속에서 경제적 주체가 행할 수 있는 선택 중 하나일 따름이지 않습니까. 공존님은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저 또한 교육의 시장화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원칙주의자에 더욱 가깝습니다. 시장에 교육을 맡기려면 그 논리 또한 시장논리에 따라야 맞지 않습니까? 교육에 시장논리가 개입되는 것을 막으려거든 시장 좌판에서 교육이라는 상품을 치워야 맞구요.


2. 분기점

"교육자로서는, 학생들에게 일방향적인 논리전달이 아니라 발제를 하고, 스스로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나는 소크라테스에 동의한다. 이러이러한 이유가 있고 그렇다면 너희는?"이라고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다른 학생이 반박토록 하고, 또 그에 대해 재반박을 하고, 머릿속의 지식을 긁어내고...네, 이정도는 되어야 도박이라고 불릴만 하겠지요. 애들도 다 컸고 말입니다."

이 부분을 따로이 발췌한 것은 서로의 입장차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부분이라 판단해서 입니다. 우선적으로 언급해야할 부분은 '학원 강사 = 교육자'의 등식 부분인데, 1에서도 언급했듯이 교육시장의 상품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는 강사의 직위를 '교육자'가 아닌 '판매자'의 입장으로 치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교육시장에서 적용되는 장치는 오로지 '판매자간의 경쟁'과 '소비자의 선택에 따르는 도태' 뿐입니다. 껄끄러우시죠? 저도 껄끄럽습니다. 허나, 악법도 법이랬다고-_- 사교육'시장'에 대해 '교육자'의 윤리규범을 적용시키는 것은 서로 맞지 않습니다. 교육'시장'에서는 교육자로서의 인격적/절차적 적합성 여부가 상품의 또다른 '장점'이 될 뿐, 판매자격을 결정짓지는 않으니까요.

또한 언급하신 대안이 함의하는 '소비자'에 대한 이 정도의 '배려'는, 되려 해당 강의의 상품성을 오히려 증가시키는 요소로써 해당 강의의 상품성을 저하시키는 일개 도박의 수준에서 벗어난 이미 또다른 상품의 수준에 이릅니다. 실제로 저러한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주는 진행방식 - 은 논술과 관련된 또다른 교육상품으로 이미 시장화 및 시장형성이 끝나 있으며, 저러한 대안을 해당 강사에게 요구하는 것은 '서양철학'이라는 강의에 '논술개론'이라는 강의를 보너스로 진행하라고 요구해 '판매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조치가 됩니다. - 교육시장주의 하에서는.

간단히 예를 들어볼까요? 만약 공존님의 대안처럼 철학사 강의가 진행된다면, 다음 강의의 선전에는 '논술대비'라는 광고문이 덧붙을 겁니다. 이게 시장성이 있다면, 해당되는 커리큘럼을 더욱 강화해 수강료도 비싸게 매기고 선전도 더 할 테구요. '서양 철학사와 논술 대비를 동시에!'라는 문구까지 예상해 볼 수 있겠군요.


3. 민주주의에 대해

민주주의는 신성한 것이 아닙니다. 신의 이름으로도 범접치 못하는 존귀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정치체제라는 선택할 수 있는 '가능항' 중에서 가장 나아 보이는 답지일 뿐입니다. 민주주의를 부정한다 - 라는 해당 강사에 대한 공존님의 판단은 그렇게 해당 강사를 비판함에 있어 한 쪽으로 무게를 쏠리게 만드는 추의 역할을 하는 듯 보입니다. 허나, 저 강사 스스로 또한 자신의 저러한 발언이 민주주의만이 독점적으로 보장하는 권리임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가장 크게 낼 수 있는 곳 - 그 곳에서 사람은 자신이 바라는 바를 말합니다. 아이는 엄마의 품 안에서, 가수는 노래 속에서, 영화감독은 스크린 속에서, 마치 귀하와 제가 이 곳에서 글을 쓰듯이. 제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그러한 '나의 목소리'가 가장 크게, 또 가장 가치있게 평가받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나의 목소리'를 인정받는 대신,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다른 짐을 지웁니다. '남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딜레마 중 하나인, '나의 권리를 무시하는 자의 권리를 나는 존중해 주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가장 바른 답은 '상대가 그렇든/그렇지 않든 나는 상대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입니다.
틀리지 않은 답은 '나의 권리를 존중해 주지 않는 사람의 권리를 내가 존중해 줄 필요는 없다.'입니다.
틀린 답은 '상대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아도 좋다.'입니다.

이렇게 바른 답과 틀리지 않은 답이라는 두가지의 선택항이 존재하는 경우 되려 그 둘 사이에서 끝없이 논쟁이 일곤 합니다만, 그러한 대립이 상대 주장의 '그릇됨'을 입증하는 방법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저, 다를 뿐입니다. 공존님은 그렇게 해당 강사의 행동을 그릇된 것으로 평가하시지만 저는 '틀리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교육이 시장에 내팽개쳐진지 어언 1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말입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입장전 주의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