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껍질을 죄다 벗긴 말캉거리는 귤조각을 입에 넣고 무릎 위 고양이를 간질거리면서 TV를 보고 있던 겨울밤. 나이 스물 넷. 선천적으로 식도가 없는 채로 태어나 지금껏 단 한 점의 음식도 삼켜본 적이 없다는 아가씨의 이야기가 나오자 귤을 씹던 입이 따악 멎었다.

식도가 없다니? 목에 구멍이 없으면 숨을 못 쉴테니 목구멍은 있을테고, 기도와 식도가 갈리는 부분 이후가 막혀있다는 얘긴가?
나머지 기관은 정상이라, 맛도 느끼고 침도 나오지만 음식을 정작 삼킬 수가 없기에 위와 연결된 호스에 죽을 주사기로 밀어넣어 그것을 소화해 살아간다. 정상적인 직장생활은 하고 있지만 회식자리에서는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입에 넣은 음식을 모조리 토해내야 한다고. 부모는 그의 모습을 보며 단 한 번의 식사조차 맘편히 하지 못했고, 다른 아이들이 아삭아삭 씹어, 꼴깍꼴깍 삼키는 소리가 그렇게도 부럽고도 죄스러웠다고.

당연한 권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행위 - 볼이 미어터져라 고기쌈을 밀어넣으면서도 단 한 번도 그것을 삼킨다는 게 불가능하리라 생각해 본 적조차 없었던 일. 그 가장 간단한 행위가 선천적으로 불가능한 사람의 모습을 눈으로 보면서,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백지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나의 입은 아무 생각없이 귤조각을 열심히 씹어 목구멍뒤로 연신 넘겨대고 있음을 알고 문득, 부끄러워졌다.

나 아닌 남을 생각한다는 것. 그 배려의 출발선은 어디여야 하는가. 나 아닌 다른 이를 떠올릴 때 우리는 나와 똑같이 보고, 나와 똑같이 듣고, 나와 똑같이 먹고, 나와 똑같이 덥고 추우며, 나와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리라 무의식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거울 속에 비추인 나를 바라보면서 그 모습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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