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 - 하나하나 쌓아오르는. 추억

때때로 일상을 회전하는 기어를 잠시 멈추고, 코코아라도 한 잔 손가락에 걸어둔 채 창밖에 흐르는 다른 이들의 시간을 구경하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럴 때, 홀짝 한 모금의 코코아를 넘기면 내 머릿속에서 피라미드처럼 그려지는 거대한 탑.

하늘에 닿고자 했던 어리석은 욕망이 무너트린 바벨탑에 비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난 내 자신의 힘으로 내 생의 시간 동안 탑을 쌓아나간다. 감동 환희 전율 시기 질투 분노 우정 사랑 신뢰 책임 의무 권리 자유 평화 행복 - 까지 시간과 함께 내게 쌓이는 다양한 자재들로 내 안에서 하나하나 그 층을 올린다. 밑변을 높이로 나누면 π/2의 값을 가지는 피라미드처럼, 일정한 높이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충분한 넓이를 필요로 한다. 충분한 기저(基底)를 확보하지 않으면 조그마한 바람에도 흔들려 쓰러지기 때문에.
- 어느 날 해변에서의 나는 신(神)이 된다. 수없이 퍼트려진 백사장의 모래를 한 줌 들어올려 한 곳에 조용히 사락사락 모래시계처럼 뿌린다. 그 아래에 남는 것은 조용한 원뿔. 몇 번이고 모래를 쥐어 똑같은 곳에 뿌리다 보면 시간에 비례해서 넓어진 바닥의 원과, 그 넓이에 비례한 높이를 가진 탑이 만들어진다. 누구의 탑일런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
시간이 가면 자연스럽게 알맞은 넓이와 높이를 가진 탑을 만드는 모래시계가 나는 아니다. 또한, 나의 시간을 까마득한 공중으로 들어올려 미동도 없이 뿌려 나의 탑을 나 대신 만들어줄 신은 없다. 나는 나의 탑을 만들어야 한다. 나의 손으로.

애석하게도, 내 생을 전부 쏟아부어 만들 수 있는 탑의 높이가 과연 몇 층이 될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100층의 탑을 만들 시간이다- 라고 알려줄 신이 있다면, 나는 열심히 바닥부터 다져나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의 여유분을 알 수 없다. 알려주는 누군가도 없다. 알려준다고 해도 그것을 믿을 수 없다. 100층짜리 탑을 만들리라 다짐하고 그에 필요한 바닥부터 다지고 쌓아올라가다 20몇 층 즈음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이 다해 나의 탑은 미완성인 채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래서 미련하게 탑을 높여갈 수밖에 없다. 25층으로 완성된 탑에 한 층만큼의 바닥을 더하고 차례차례 나의 삶을 쌓아올려 가장 마지막 한 조각의 행복을 놓을 때야 비로소 나의 탑은 26층에 오른다.

한 층을 오르기 위해 그 제곱 배의 넓이가 필요하다. 나의 높이를 한 층 올리기 위해서는 나의 넓이를 그 제곱 배로 넓혀야 하는 것. 지금까지 만들어진 탑의 까마득한 둘레를 가뿐히 포용할 또 다른 테두리를 만든 다음에야 탑쌓기는 시작된다. 처음 한 층을 올리는 것은 한 조각이면 되지만 25층에서 26층으로 올리기 위해서는 25층 전체를 덮을 만큼의 수많은 조각을 필요로 하는 일. 신의 손은 없기에, 나는 나의 다리로 나의 시간을 짊어지고 탑을 오른다. 그렇게 한 층. 또 한 층.

나의 시간은 어디에서 멈출까. 얄궂게도 신은 꼭, 마지막 한 조각을 지고 오르는 중에 마지막 시간의 모래를 거두어 가더라마는. 나의 삶은 언제고 미완성이겠지만, 그 미완성의 마지막이 올 때까지 가장 높은 완성을 향해.

덧글

댓글 입력 영역



입장전 주의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