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기에 - 여행의 이야기. 지나온 것들

(포스트를 역순으로 읽어오시면 더욱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외국여행을 해보지 않겠느냐. 아버지가 물었다. 개뿔. 기백만원의 비용을 바꿔서 내가 얻을 무엇인가에 대한 호기심이, 몇달치의 가계생활비와 맞먹는다는 걸 모르는 나이의 나였다면 덥석 그러마 했겠지. 하지만 이제 그러기엔 나도 너무 늙었다고. 정녕 그러길 바랬다면 아이의 눈에 비참한 집안꼴을 보여주질 말던가.

그 달콤함을 참고 협상으로 얻어낸 것이 이번의 여행. 협상의 법칙을 신나게 파읽어놓고서 얻은 첫번째 결과가 고작(?) 이거라니. 포항. 서울. 이 두 곳. 사실, 모든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여행의 명소는 결단코 아니다. 단지, 내게 얻은 시간을 의미있는 이들과 보내고 싶었을 뿐. 뭐, 아직 소년같은 얘기지만 아직은 늙어가지 않아도 좋을 때.


언제까지고 그렇게 느끼겠지만, 치기어린 시절에 써두었던 네 줄 짜리의 문구가 있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신뢰하는 사람'

이번 여행의 목적은 사실, 이 세 사람을 만나고자 함이었다. 이제는 지나간 얘기일지 몰라도 내게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이야기. 포항으로의 여행은 '신뢰하는 사람'이 휴가를 맞아 포항에 놀러온다는 기별에 맞춰서 날짜를 잡았다.

이 녀석은 나와는 다르게 사람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많은 타입. 신기하게도 녀석 스스로는 사람들을 귀찮아하고 따로이 친구를 만들려 들지 않는 타입이다. -_- 신은 불공평하게도 녀석에겐 좌중을 주무를 수 있는 화술과 언변을 주셨고, 내게는 녀석의 헛손질 한 방에도 붙들고 뒹굴어버릴 수 밖에 없는 취약한 배꼽을 주셨다. 나름의 역사는 길지만, 시간이 지나 녀석과 나는 친구로 남았다. 언제였더라. "만약에 내가 급하게 큰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너는 내게 자신의 생활이 휘청거릴만큼의 지원을 감히 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즐-_-"로 받아친 서로가 서로에게 웃으며 맥주잔을 건네었다. 지금에 와서는 희미해졌지만, 그런 부탁을 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런 부탁을 하게끔 내버려두지도 않을 친구에 대한 확신의 기억에 그날은 울면서 술을 마셨었다.

트럼프로 하트 게임을 하면, 녀석은 나를 너무 잘 읽는다.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고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을 택하려드는 나의 스타일을 너무 잘 아는 까닭에, 녀석은 기회가 되는대로 슛더문(성공자 제외 전원에게 26점의 페널티를 먹이는 최악의 종료조건)을 노린다. 덕분에 이용당하려 하지 않으려 해도 이용당하게 되어버리는 상황을 수도 없이 겪었고, 이제는 슛더문조차 허용하지 않는 내가 되어 있었다. 1등으로 이겼지만, 24점 정도의 꽤 많은 페널티를 먹었다. 한자리 점수로 이기거나 아니면 3연속 슛더문을 맞아서 아웃된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바뀌었을까. 녀석은 나를 보며 웃었다. 나는 녀석을 보며 웃지 못했다. 내가 웃을 수 있는 단 한번의 때는 7박8일을 함께 뒹굴다가 부대로 복귀하는 마지막날 아침, 버스를 오르는 그를 향해서였다.

의도한 대로, 나머지 떨거지로 분류되어버린 사람들에겐 따로이 사과하지 않겠다. 사실, 사과할게 없다. 포항에서 보내었던 4일부터 16일까지의 13일동안 8일은 녀석의 것이었고, 나머지 시간은 그들의 것이었으니까. 왜 아직까지 남아있느냐고 물어보던 사람도 있었는데, 나름의 빚갚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물어오는 사람에겐 들려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저녁식사는 약속이 있어서 같이 먹기 힘들다던 녀석은 저녁먹고서 포항뜰거라는 내 말에 '이ㅅㅂㄹㅁ가 ㅡㅡ'로 받아치고선 함께 저녁을 먹었다. 유쾌하다니깐. 함께 있으면 언제나.

흔히들 여행이라 함은, 익숙한 사람들 사이를 떠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 혼자가 되어보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산을 오르고 말이 통하지 않는 곳으로 떠나는 사람은 내게 여행의 참의미를 모르는 자라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상을 벗어나 즐거움을 찾아떠나는 것이 여행이라면, 내겐 만나고픈 사람을 찾아 먼곳으로 떠나는 것이 여행이다. 내게 일상은 고요한 외로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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